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집. 잡곡 농사가 잘 되는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장 담그기를 몇 년째 머뭇거리고 있었다. 한번 담은 장 맛은 일년 이상 집안 음식맛을 좌우하게 되니 걱정이 앞서서 엄두를 못낸 것 같다. 정월장이 맛있다는 말에 설맞이 하는 것보다 장 담그는 일이 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연세 있으신 분들은 한번만 해보면 별거 아니라고들 하시지만, 간지력으로 말날, 손 없는 날, 비나 눈 없는 날을 잡아야하고 부정 쫓는 고추 새끼줄에 종이 버선까지… 엄청 신경을 써서 정성을 다해야하는 듯하다.
어릴 때 할머니께서 삶은 콩을 절구에 빻아서 틀에 넣으시면 흰 면보자기 덮고 올라서서 밟아 모양 잡기하는 것은 내 몸무게가 가장 적당해서 여러해 도와드렸다. 구수하고 부드럽게 삶긴 따뜻한 콩 맛 때문에 더 기억이 생생한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기억만으로는 장 담그기가 되지는 않으니 …
옆집 할머니 댁에서 농사 지으신 콩으로 메주를 띄우신다. 올해는 반드시 장을 담그리라 다짐하고 콩 수확하기 전에 미리 한 말의 메주를 부탁드려 놓았었다. 예약되어 있던 메주양에 착오가 있어서 할머니댁의 몫으로 빼놓으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겉부분의 곰팡이를 솔로 씻고 말려 놓으셨다고한다. 장독도 미리 씻어 준비해 놓으셔서 메주를 바로 넣기만했다.

간수를 빼기 위해서 3년 묵은 소금을 대체로 사용하지만, 국내 장판 천일염을 넣고 싶지 않아서 프랑스 게랑드 토판 천일염을 10kg 구입했다. 소금맛은 늘 사용하는 것이라 잘 알고 있지만, 장으로 담그기에 어떨지 걱정스러움을 안고 시도해보기로 했다. 언제건 한번은 시도해보아야 할 것인데, 그 맛이 정말 궁금하다.
소금을 물에 녹이는 것도 정월, 이월 또는 삼월, 그리고 지역에 따라 기호에 따라 염도는 달라지고, 500원 동전 크기로 떠오르는 계란으로 가늠하거나 무게 계량으로 또는 % 계산 방정식을 푸는 염도 계산법까지 다양하다.
전날밤에 녹여두려 준비하고 있었는데, 친정 엄마께서 소금은 해뜨기 전 아침에 잘 녹고 해뜨면 잘 안녹는다고 하신다. 무슨 이치인지 어리둥절 모르겠지만, 잘 된다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한다. 새벽같이 일어나려고 잠자리에 누워도 소금과 물의 양을 잘 정했는지 고민하며 밤새 뒤척였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깨끗한 앞치마를 두르고 밖으로 나가 동서남북으로 기도했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그렇게 하셨을거라 생각하면서…

소금 7kg에 물 28 litres를 부어 녹였다. 계란이 혹시라도 싱싱하지 않을까봐 여러개를 물에 담구어서 가라앉은 것을 고르는 방법도 거치는데 모두 바닥으로 내려가 있어서 예쁘게 생긴것으로 선택. 소금물에 띄워보니 딱 500원짜리 만큼 떠오른다. 초보의 마음 졸임은 한결 가벼워졌다. 뚜껑을 덮고 고운 갯벌흙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장독에 또 한번 더 채반과 삼베보다 더 고운 짜임의 면을 얹어서 소금물을 천천히 부어 넣는다. 한 말의 된장독에 소금 8kg 을 32리터의 물에 녹인 소금물을 부었다. 말린 빨간 고추 세 개와 대추 세 알, 그리고 발갛게 달아 있던 참숯을 넣어주었다.
이 장이 좋은 햇볕과 바람 속에 잘 익어서 이 장을 먹는 모든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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